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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책 리뷰_02] 서른의 반격

by 유니버스89 2020. 9. 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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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목 _ 서른의 반격 (2017)

저자 _ 손원평

출판 _ 은행나무

 

 

『서른의 반격』 이라는 제목에서 끌렸다. 그것 말고는 이 책을 집어든 큰 이유는 없었다. 책에 대한 사전 정보가 있었다면 “제5회 제주4∙3 평화 문학상 수상작이구나.” 정도. 하지만 처음 이 책을 읽고 난 후 여러번 다시 읽었다. 견고한 세상의 벽 밖에서 무기력하게 쓰러져 있던 내게 누군가가 어디 한번 던져라도 보라며 날계란을 쥐어 준 느낌이 들었기 때문이다. 


책을 읽으면서 주인공 ‘지혜’에게 몰입이 많이 되었던 것 같다. 그녀가 처한 상황들, 고민하는 마음의 갈등들이 꼭 내 이야기 같았다. 대기업과 같은 사회의 성공한 시스템에 속하고 싶은 욕망과 부당한 일을 당하면서도 그것에 대해 말 한마디 꺼내지 못하는 무기력함, 그리고 세상의 주인공은 따로 있고 나는 그저 무대 아래 객석에서 그들을 향해 박수쳐 주는 관객일 뿐이라는 생각을 지혜와 똑같이 가지고 있었기 때문이다. 그러던 어느 날, ‘지혜’ 앞에 그리고 ‘내’ 앞에 ‘규옥’이 등장하면서 ‘우리’의 마음에 작은 균열이 가기 시작했다.


그는 세상이 변하지 않더라도 부당함에 대해 이야기 해야한다고 말한다. 지금 당장 세상을 변화시킬 수는 없더라도 내가 내뱉은 말이 눈앞에 있는 저 한사람의 마음 속에 부끄러움을 일으킬 수 있기만 해도 세상은 조금씩 변할 거라고 믿는다. 규옥이 내놓은 ‘반격의 방법’은 그렇게 어려워 보이지 않는다. 하지만 분명한 건 용기가 필요하다는 것이다. 


세상의 벽은 높고 견고하다. 예를 들면 젊은이들에게는 기성세대가 일구어 놓은 성공적인 결과물들이, 예술인들에게는 자본주의라는 시스템이, 노동자들에게는 고용이라는 제도 등등 각자가 처한 상황에서 느끼는 세상의 벽은 정말 다양할 것이다.

 

이 높고 커다란 벽 밖에는 세 종류의 무리가 있다. 한 무리는 가느다란 빛이 세어 나오는 벽에 뚫린 작은 구멍 안으로 서로 들어가겠다고 경쟁한다. 다른 한 무리는 벽이 너무 높고 구멍이 아주 좁다는 것을 핑계 삼아 구멍 안으로 들어가는 것을 포기하고 무기력하게 앉아 벽에 걸린 TV에서 방영되는 벽 안쪽 세상 이야기를 들으며 고개를 끄덕이고 있다. 그리고 또다른 한 무리는 벽에 걸린 TV에 날계란을 던지고, 벽을 향해 발길질을 하며, 자신만의 방법으로 낙서를 한다. 다른 무리들이 그들을 보며 아무 소용없는 짓이라고 혀를 차도, 벽 위로 누군가가 고개를 내밀어 그런다고 벽이 무너지겠냐며 비웃음 날리고 침을 뱉어도 말이다.

 

규옥은 우리에게 세번째 무리에 들자고 제안한다. 벽이 무너지지 않더라도 우리가 가만히 있지 않는 다는 것을 계속 보여줘야 한다면서 말이다. 맞는 말이다. 힘과 자본으로 견고한 벽을 쌓아 올린 세상은 우리가 무너지지 않는 벽 앞에서 기죽어 아무것도 하지 않기를 바랄지도 모른다. 소설 속에서 지혜와 규옥처럼 실패를 겪고 상처를 받으면서도 세번째 무리에 속하고 싶다는 마음이 들었다. 

 

이제 세상이 만들어 놓은 무대가 아닌 나만의 무대를 벽 밖에 차곡차곡 만들어 보련다. 소설 마지막 장면에서 기름이 고인 물웅덩이에서 무지개가 피어나는 것처럼 꼭 무지개가 손에 잡히지 않는 하늘에서만 피어날 필요는 없는 것이다.     
 

* 이야기 중간중간에 언급되는 음악들을 들으며 책을 읽어 보기를 추천한다. ^^

 

 

p.49
“꼭 이 강의실의 의자를 말하는 게 아니라 ‘의자의 마법’에 대해서 얘기하는 겁니다. 앞에 있는 의자에 앉으면 권위와 힘을 가진 줄 착각하는 마법에 걸리게 되죠. 그리고 수없이 깔린 의자에 앉으면 힘없는 대중이 되어 앞에 있는 사람의 말에 고개를 끄덕이는 마법에 걸립니다. 의자는 의자일 뿐이라는 걸 다들 까먹어버린단 소리예요.”

 

p.82
“그냥 밖으로 크게 소리 한번 지른 건데. 적어도 내가 그 사람에게 내재된 부끄러움을 한 번쯤 되새겨준 건 아닐까, 하는 생각이 들더군요. 그 뒤부터 생각이 많아졌어요. 잘못된 걸 잘못됐다고 말하기만 해도 세상이 조금쯤은 바뀌지 않을까, 하는 생각.”

 

p.83
“확실한건, 무언가가 조금도 바뀌지 않았다면 그건 누구도 행동하지 않았다는 거죠.”

 

p.170
“스스로가 계속 전진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거 같은데 그게 사실은 도망치는 거라는 걸 알면서 모르는 척하는 거예요, 아니면 정말로 진짜라고 생각하는 거예요?”

 

p.187
어쨌든 그 일은 내게 꽤 큰 교훈을 남겼다. 속내를 감추지 않고 단지 겉으로 표현하는 것만으로도 무언가를 변화시킬 수 있다는 것.

 

p. 203
“설령 지금 당장 뭔가가 바뀌지 않는다고 해도요. 가만히 있지만은 않는다는 걸 자꾸자꾸 보여줘야 해요.”

 

p.228
“세상이 바뀌지 않더라도 우리는 나이 들어서 오늘을 기억할 겁니다. 그때도 지금처럼 우리가 옳지 않다고 생각하는 것들을 여전히 비판할 수 있었으면 좋겠습니다.”

 

p.231
“바뀌어야 할 것들이 있다면 그걸 제대로 알고 또 알리는 것부터가 시작이라는 결론을 얻었거든요.”

 

p.232
내가 우주 속의 먼지일지언정 그 먼지도 어딘가에 착지하는 순간 빛을 발하는 무지개가 될 수도 있다고 가끔씩 생각해본다. 그렇게 하면, 굳이 내가 특별하다고, 다르다고 힘주어 소리치지 않아도 나는 세상에서 하나뿐이 존재가 된다. 그 생각을 얻기까지 꽤나 긴 시간과 노력이 필요했지만 조금 시시한 반전이 있다. 그렇게 애쓰지 않아도, 애초에 그건 언제나 사실이었다는 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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