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리뷰

[연극 리뷰_02] 돌이 된 여자

by 유니버스89 2020. 9. 21.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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돌이 된 여자

2020.09.16(수)~2020.09.27(일)

대학로 예술공간 혜화

 

 

제작 _ 극단 피오르

    _ 김성민

연출 _ 임후성

출연 _ 이준호, 김여은, 임후성 

 

 

*본 리뷰는 스포일러를 포함하고 있습니다. 

 

"여자는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

본격적인 이야기가 시작되기 전 극 중에 연출이 등장해 이 질문을 던진다.

 

연극 <돌이 된 여자>의 모티브는 '며느리 바위' 설화이다. 물에 잠기는 세상에서 달아나지 못하고 끝내 돌아본 자리에서 돌이 된 여자... 그녀는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

 

 

하반신 마비인 '민성'은 청년작가로 반지하방에서 혼자 살아가고 있다. 그러던 어느 날, 민성이 사는 집으로 낯선 여자 '연화'가 불쑥 나타난다. 둘은 처음 만난 순간부터 서로에게 끌린다. 하반신 불구의 민성은 연화의 건강한 다리를 좋아하고 연화는 민성이 들려주는 이야기를 좋아한다. 둘은 서로의 몸을 쓰다듬고 마음을 나누며 1년을 함께 보낸다. 하지만 둘 사이에 '섹스'는 없다. 

 

연화는 앓고 있는 병 때문에 자신이 얼마 지나지 않아 죽을 것이라는 걸 예감하고 민성을 떠나려고 한다. 이별의 순간, 연화는 민성에게 이야기를 들려달라고 한다. 연극은 민성이 들려주는 이야기와 민성과 연화의 이야기가 교차되면서 진행된다.

 

민성이 들여주는 이야기의 줄거리는 이러하다. 흉년과 기근으로 살기 어렵던 시절, 숲에 사내와 며느리가 살고 있다. 길 잃은 개를 잡아 연명하는 사내와 떠돌이 계집은 봄과 여름 서로의 몸을 탐닉한다. 일찍이 세상의 선을 구하려 고행하다가 이곳에 온 다른 사내는 육욕에 빠진 사내에 맞서 선한 며느리를 구해 떠나려 한다. 가을에 사내의 몸은 쇠하고, 겨울에 계집과 사내는 나쁜 병에 걸려든다. 그리고 숲에는 재앙이 내린다. 사내는 개들에게 뜯기고 다른 사내는 남은 며느리를 구해 달아난다. 

 

이야기 속 시아버지와 며느리의 관계가 꼭 민성과 연화 같다는 생각이 들었다. 서로를 보살피고 애틋한 마음을 가지고 있지만 몸을 섞을 수 없는 관계. 

 

시아버지가 개들의 습격으로 목숨을 잃게 되고 다른 사내와 도망을 가던 며느리는 결국 뒤를 돌아보고 만다. 뒤를 돌아보면 돌이 되는 줄 알았음에도 불구하고 그녀는 왜 뒤를 돌아보았을까? 나의 답은 몸은 떠날 수 있어도 마음은 떠날 수 없었기 때문이다. 몸으로 사랑을 나눌 수 없어도 마음으로 사랑했고, 생존을 위해 떠나야 하는 걸 알면서도 마음은 떠날 수 없어 그 자리에 단단히 굳어 버린 것이다.  

 

이 연극은 '몸'에 대한 이야기라고 한다. 하지만 나는 '마음'에 대한 이야기로 들렸다. 늙고 병들고, 본능에 지배당하는 몸을 가진 존재인 인간을 움직이는 것은 '몸'이 아니라 '마음'이라고 이야기하는 것 같았다.   

 

극 중에 연출이 이런 말을 한다. 이 우주 안에는 거의 모든 것들이 죽어있지만 지금 우리는 여기 살아있다고.

"살아있다."

우리의 살아있는 '마음'을 소중히 보살피고 귀 기울여 보라는 말이 아니었을까?

 

세 명의 배우가 무대를 꽉 채운 공연이었다. 두 가지 이야기가 교차되는 전개와 일인다역을 맡은 배우들의 시시각각 변하는 연기에 지루할 틈이 없었다. 마치 극 중에서 인물들이 연극 놀이를 하는 것 같기도 했다. 배우들의 연기도 연출 방식도 연극이 가지고 있는 매력을 한껏 살려 준, 연극의 매력이 잘 표현된 공연이라는 생각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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